[편집자 주] '이세돌과 알파고' 이후 5년 남짓, 인공지능은 낯설고 새로운 미래가 아닌 이미 익숙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가전제품에서부터 자율주행차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온라인 상거래부터 신약개발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은 우리 삶과 세상에 물처럼 스며들고 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방법은 변화를 쫒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AI타임스는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인공지능의 현재를 톺아봄으로써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수동적 변화가 아닌 능동적 혁신으로 이끌 수 있는 길찾기의 하나로 ‘인공지능백서 2021-AI와 우리사회의 변화’ 특집기획을 연재한다.

문득 옛날 영화 한 장면에 나오던 탱고 음악이 생각 나 유튜브를 찾았다. 제목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탱고"와 "영화" 등 아주 기본적인 단어만 입력해 검색을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면 모니터 화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열심히 찾아 볼 요량이었다. 왠걸, 화면 아래쪽으로 움직일 필요도 없이 몇 줄 지나지 않아 그 영화의 배우들이 등장하는 썸네일이 나타났다.

재생하고 보니 내가 찾던 바로 그 장면, 그 음악이 흘러 나온다. 검색 엔진 성능이 아주 좋군. 듣다 보니 탱고 특유의 애잔하며 극적인 선율을 좀 더 듣고 싶어 오른쪽 추천 영상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을 클릭했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내 취향이다. 어쩜 이렇게 내 입맛에 딱 맞을까.

인공지능이란 녀석은 아주 똑똑해서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다. 검색창에 몇 글자 치자마자 거의 원하던 결과를 내놓고, 추천하는 영상은 숨겨진 보석을 우연히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사실 인생에서 기쁠 때가 이렇게 전혀 예기치 않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요즘 이렇게 우연히 발견된 행운(serendipity)이 부쩍 많아졌다. 넷플릭스가 'Just for you'라고 붙여 놓은 범주의 영상물도 그렇고, 네이버 검색에 나오는 구석진 맛집, 카카오의 신기한 웹툰이 그렇다. 완벽하게 딱 들어맞지는 않아 가끔 이상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다 괜찮은 수준이다.

(출처=셔터스톡)

인공지능이 이렇게 우리 마음을 잘 아는 이유는 이미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아주 빠른 속도로 분석해서 우리가 어떤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가장 높은 확률의 경우를 계산해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어떤 음악과 영화를 듣고 보는지 언제 보는지 누구와 가까이 또는 멀리 있을 때 보는지 각종 사생활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아 전체 플랫폼 단위에서 분석한다.

필요하면 이렇게 모은 정보를 사고 팔기도 한다. 어제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본 영화는 좀 민망해서 내가 봤다는 데이터는 없어졌으면 하지만 그것도 서버 컴퓨터 한 구석에 저장돼 있을 것이다. 이런게 약간 찜찜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잘 찾아 주는데 그 정도 쯤이야 하며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래도 뭔가 신경쓰이는 것이 남는다. 인공지능이 내 마음을 잘 알아서 편하기는 한데 내 눈 앞에 가져오는 영화나 음악, 상품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맞을까. 혹시 내가 클릭하는 것이 내 선택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미리 정해 놓은 것은 아닐까.

나보다 더 나를,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행동 방식을 잘 아는 알고리즘이 내가 선택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을 계산해서 내놓는 것이라면 이 선택이 나의 선택일까 인공지능의 선택일까. 미셸 푸코의 말마따나 나는 내가 자유롭다고 여기고 선택과 클릭을 반복하지만 훨씬 이전에 그렇게 계산돼 있었던 것은 아닌가.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나는 보다 자유로워졌나 아니면 그 반대인가.

이제는 자유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유명한 사람들이 내놨던 자유의 뜻을 보니 '외부적인 장애가 없는 상태(홉스)'와 '법을 준수하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적으로 사는 것(로크)', '공동체의 집단적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행위(루소)', '법이 금지하지 않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몽테스키외)' 등이 있다.

알쏭달쏭한 게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 얼마 전 극장에서 본 영화의 대사가 생각났다. 영화 '프리가이'에서 주인공인 가이가 다른 주민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한다. "더이상 배경으로 살지 말고 (자기 인생의 주체로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자." 철학자들이 한 말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자유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가이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으로 인간 개발자들이 설정해 놓은 틀과 한계를 넘어 새로운 생명체가 되며 자유로워진다.

현실에선 인공지능이 아직 자유의 몸이 되지 않았지만 이들은 우리의 자유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거대기술기업은 강력한 인공지능으로 무장해 개인의 심리와 행동방식에 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수집, 축적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설계하고 제시한다. 우리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통제 당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무심코 사생활 정보를 건네고 편리함을 받는 것 처럼 이것도 애써 무시하고 살아야 하나.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는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일한 뒤 University of Texas에서 언론학 박사를 받고 미국 Indiana University 미디어스쿨에서 교수로 약 10년간 재직했다. 인텔리전트 네트워크 등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과 개인 및 집단의 행동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지능정보 테크놀로지와 디지털 미디어 네트워크, 여론 형성과 변화 등에 대한 의견과 논평을 신문방송 등 다양한 공론장에서 제시하고 있으며 관련 자문 및 컨설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jklee0714@g.skku.edu

<인공지능백서 2021-AI와 우리사회의 변화>특집 칼럼

[양지열 칼럼] 인공지능(AI) 판사는 정의로울까?

[최원희 칼럼] 스마트 팩토리, AI, 그리고, 메타버스

[김재민 칼럼] 탄소 저감형 스마트 도시 유틸리티 구성을 위한 AI 기법

[임종수 칼럼] 공정 신화와 알고리즘 상상력

키워드 관련기사
  • "AI가 기업 CEO 목소리 모방하고 은행 전산망 침투"...AI 활용 금융사기, AI로 막는다
  • "인공위성과 AI가 만나면? 할 수 있는 일 무궁무진하죠"...전태균 SIA 대표 인터뷰
  • 데이터센터용 AI칩 선두는 여전히 엔비디아...현장에 맞는 성능 평가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