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세돌과 알파고' 이후 5년 남짓, 인공지능은 낯설고 새로운 미래가 아닌 이미 익숙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가전제품에서부터 자율주행차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온라인 상거래부터 신약개발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은 우리 삶과 세상에 물처럼 스며들고 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방법은 변화를 쫒지 않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AI타임스는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인공지능의 현재를 톺아봄으로써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수동적 변화가 아닌 능동적 혁신으로 이끌 수 있는 길찾기의 하나로 ‘인공지능백서 2021-AI와 우리사회의 변화’ 특집기획을 시작한다.

지난해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I판사를 채용하여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세계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하고도 고작 1년 6개월의 징역형에 그친 판결에 분노한 목소리였다. 검찰과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얼마나 낮은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차라리 인공지능이라면 “기계적” 중립이나마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그 편이 더 정의롭지 않을까 하는 질문인 것이다.

법원은 복잡한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최종 해결 기관이다. 그런 역할을 과연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피와 눈물이 없는 대신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도 없이 공정할 것인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필요한 일인지, 한계는 없을 것인지, 미래를 위한 사회적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법원의 재판은 크게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과 그에 대한 가치 판단으로 이뤄진다. 누군가의 복부를 오른손과 왼손으로 번갈아 한 차례씩 때렸다. 다행히 맞은 쪽이 크게 다치지는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을 행사한 것이지만 자연적으로 나을 정도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형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여야 하는 폭행죄라는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쉽다. 얼마든지 인공지능으로 가능할 것이다. 듣는 사람이 겁을 먹을 만큼 해악을 고지하면 협박죄이다. 막연하게 “가만두지 않겠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위협을 느끼는지 인간의 감정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인공지능은 과거 재판의 판결문들을 모아, 판결에 쓰인 단어들을 학습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인간들이 누군가를 협박하는데 사용하는 어휘라는 게 얼마나 다양하고 창의적이겠는가.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201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200년 가까이 내렸던 판결 2만 8천여건을 인공지능에게 다시 판단하도록 한 결과 70퍼센트 가까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당장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보조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위원회는 이미 2018년 인공지능 사법제도 헌장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판사가 가능하느냐에 대한 답은 내려졌다. 현실이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그렇다 하더라도 발달한 데이터 베이스(DB) 수준의, 업무효율을 위한 보조수단을 넘어 독립적인 판단까지 내리는 인공지능 판사가 필요할 것인가? 2021년 7월 법조계는 판사 지원 자격을 둘러 싼 논란에 휩싸였다.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판사로 임용할 수 있도록 높여 놓았던 기준을 5년으로 다시 낮추자는 법원조직법 개정안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손이 딸려서이다. 판사가 부족하면 재판이 미뤄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입는다.

법조계가 눈을 감고 있는 문제도 있다. 민사소송의 70퍼센트 가량은 이른바 소액사건이다. 소송가액이 3천만원 이하일 때 소액사건으로 분류한다. 대부분 3천만원까지 이르지도 않는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을 둘러싼 갈등을 겪기 쉽다. 비율로만 따지자면 절대 다수이지만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배 보다 배꼽이 크니까. 변호사 없이 당사자들이 법정에 나오다보면 판사 입장에서도 반가운 사건들이 아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만큼 진행하는 일이 어렵다. 게다가 아무리 많은 숫자를 처리해도 경력에 도움도 안된다. 국민들의 고충의 크기와 법원의 입장은 반비례인 셈이다.

비단 소액 사건이 아니더라도 쟁점이 크게 복잡하지 않으면서 단순 반복되는 일들도 많다. 회사를 운영하며 상법상 등기를 게을리했다거나, 파산을 위해 재산 조회를 신청했을 때, 분할 비율이 정해진 이혼 사건의 재산분할 내역을 정하는 일처럼, 도장만 찍으면 되는 일들이 있다.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에스토니아 사법부는 그래서 2020년부터 분쟁 가능성이 적은 소액재판을 인공지능 판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중국도 온라인으로 질의응답을 통해 형사소송 진행을 돕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가정법원은 이혼하는 부부의 재산분할도 인공지능이 담당하기 시작했다. 필요성도 입증이 된 셈이다. 우리 법무부도 인공지능으로 생활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챗봇 “버비”를 선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보다 복잡한 사건들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는 과연 인간 판사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울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방법은 기존 판례와 법령들을 검토하는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국민청원은 판결이 잘못됐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여기서 첫번째 문제점이 있다. 입력하는 원래의 자료 자체가 잘못돼 있다면 결론이 달라지기 어렵다. 좋은 내용만 선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공정성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더구나 법원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다. 판사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항변은 만들어진 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이다.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법원은 2021년 6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최초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했던 기존 판례를 바꾸는 것이다. 그냥 나온 결정이 아니다. 지방법원 하급심들에서 무죄 판결이 잇따르면서 법 해석을 달리하기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기존 판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질 인공지능이 이런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인공지능 판사는 가능하고, 필요한 일일 수 있다. 정치적 중립성을 갖출 것이고, 누군가와의 특별한 이해관계에 휘둘리지도 않을 것이다. 받아들여야 할 변화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중심이 국민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청원은 국민이 바라는 바를 국가에 호소하는 일이다. 법원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확한 판결 못지않게 중요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충실하게 귀를 기울이는 판사를 좋은 판사로 꼽는 이유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하도록 도울 것이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판사들 편하자는 일이 아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돕는 일이어야 한다. 새로운 법과 제도로 인공지능을 도입해야 할 정치권이, 때로는 사람보다 똑똑해 보이는 조수를 두게 될 법원이 잊지 말아야 할 청원이다.

 양지열 변호사는 고려대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사법연수원 40기로 수료했다. 중앙일보 기자로 5년간 근무했으며, 출판도시 문화재단 이사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블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교통방송, YTN, SBS 등 여러 방송 매체에 출연해 시사 분야에 대한 법률적 분석이나 평론을 하고 있다.

양지열 변호사 법무법인 에이블 consultyj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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