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보다 치료제 개발, 약물 재창출에서 집중 활약
5년치 작업 50일 만에 가능...1조원 이상 개발 비용 절반으로
코로나19 치료제 바리시티닙·렘데시비르, AI가 발굴

[편집자 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발생한 지 2년을 앞둔 지금, 백신개발과 접종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그러나, 델타변이 등 변종바이러스 급속 확산으로 사태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국내 백신 접종율이 70%를 넘어서고 있어 조만간 사태 종식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긴 하다.

약간 이르긴 하지만, 조만간 닥쳐올 단계적 일상 회복 즉,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준비해야 한다. 이 시점에 인공지능(AI)이 코로나19 사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와 부작용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며 가까운 미래를 대비하는 첫걸음을 내디뎌보자.

MS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 9일(현지시간) 인공지능(AI) 기반 신약 개발을 하는 영국 스타트업 엑스사이언티아(Exscientia)에 4년간 약 820억원을 지원하는 계약을 맺었다.

해당 기금으로 엑스사이언티아는 코로나19 치료제와 함께 이후 새로이 발병할 전염병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AI를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분야 중 하필 ‘신약 개발’에 빌 게이츠가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신과 치료제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종식시킬 결정적인 해결책으로 손꼽힌다. 코로나19는 현재 전세계인이 공유하는 최대 고민인 만큼 거액을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신약 개발 기업 중에서도 ‘AI’를 활용하는 곳을 택한 이유를 물을 수 있겠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예측에 강한 AI는 신약 개발 최대 난제인 비용 문제를 개선할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통상 신약 개발에는 최소 10년이란 시간과 1조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성공률 또한 약 10%로 투자 대비 극히 낮다. 동물 실험에서 효과를 보일지라도 막상 인체 대상 임상에 들어가면 다른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즉 그간 진행한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인간 연구원 1명이 신약 후보물질을 찾기 위해서는 1년간 200~300건의 연구자료를 분석, 총 1~5년 시간이 걸린다.

AI의 경우 같은 기간에 논문 100만건을 동시에 분석하고 임상데이터 400만건을 처리할 수 있다. 새로운 약물 설계부터 합성, 검증까지 50일 이내에 완료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약 1조2000억원 개발 비용을 절반 가량인 6000억원 정도로 낮춘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백신과 치료제 마련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AI 기반 신약 개발법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코로나19 치료제 발굴한 베네볼런트 AI...모더나·구글도 AI 신약 개발 시작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AI는 백신보다 치료제 개발, 특히 약물 재창출 분야에서 힘을 발휘했다.

약물 재창출은 이미 시판 허가를 받고 의료 현장에서 사용 중인 약물이나 출시 단계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임상시험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약물 중 다른 새로운 질환에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찾는 신약 개발 방법이다.

기존 신약 개발은 타겟 발굴, 후보 물질 스크리닝·최적화, ADMET, 개발, 등록 등의 과정을 거치므로 10년 이상 소요된다. 반면 신약 재창출을 사용할 시 화합물 규명, 화합물 획득, 개발, 등록 과정만 거쳐 3년 내에 신약 개발이 가능하다.

약물 안전성이나 약동학과 관련된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성공률도 기존 방법보다 높다.

신약 재창출에서 AI는 코로나19와 같이 새로운 질병에 대한 치료제가 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찾고 비임상까지 가는 속도를 대폭 줄이는 역할을 맡는다.

올해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바리시티닙(Baricitinib)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정식 승인했다. 본래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였던 바리시티닙을 코로나19 치료제로 만든 주역 중 하나는 AI다.

AI 기반 약물 발굴 업체인 영국 베네볼런트 AI(Benevolent AI)는 바리시티닙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적합하다는 의견을 코로나19 유행이 막 시작된 2020년 2월 국제학술지 란셋을 통해 처음 제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베네볼런트 AI는 머신러닝(ML)을 통해 분자 구조 데이터를 의학 정보와 연결해 잠재적인 약물 표적을 찾았다.

연구팀은 세포 내 이입을 촉진시키는 단백질인 AAK1을 저해해 바이러스의 세포내 이입능력을 감소시키는 방법을 코로나19 치료법으로 제시했다.

알려진 378개의 AAK1 저해제 중에서 이미 사용 승인받은 47개의 약물을 골라내고, 이 중 AAK1과 결합력이 높은 6개의 저해제를 선택했다. 이 중 부작용이 심하지 않고 투여 용량 대비 치료 효과가 큰 약물을 고른 결과가 바리시티닙이다.

이후 2020년 11월 인간 연구팀이 AI가 제시한 후보군에 대해 임상을 진행, 유효성을 입증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대와 영국 임페리얼대 의대 공동연구팀은 바리시티닙을 코로나19 고위험군 중증환자 수십 명에게 투여한 뒤 생존율을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바리시티닙을 투여한 환자가 투여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생존률을 보였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됐다.

전세계인이 접종 중인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도 최근 AI 기반 신약 개발 방식을 본격 도입하기 시작했다. 모더나는 올해 9월 15일(현지시간) AI 기반 항체 발굴 플랫폼을 보유한 캐나다 생명공학기업 앱셀레라(AbCellera)와 다중 표적 연구 협력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모더나가 이전에 없던 메신저리보핵산(mRNA) 계열 백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기업인 만큼 mRNA 의약품을 위한 치료용 항체 발굴에 AI를 사용할 계획이다.

앱셀레라의 AI 플랫폼은 자연 면역 반응을 탐색, 분석하면서 모더나가 선택한 최대 6개 표적에 대한 치료용 항체를 식별하는 역할을 맡는다.

가장 획기적인 AI 신약 개발 기술을 보유한 곳은 대형 제약사가 아닌 구글이다. 구글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폴드2는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단연 AI와 생물학계 최대 화두였다. 알파폴드2는 아미노산 서열만으로도 단백질 3차원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

[관련기사]딥마인드 “50년 묵은 과제 해결했다”...알파폴드2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단백질 구조 예측

딥마인드에 따르면 알파폴드2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 구조를 예측하는데 성공했다.

딥마인드는 2020년 12월 공식 블로그에서 "올해 초 우리 회사는 코로나19 원인 바이러스인 SARS-CoV-2와 미스터리 영역에 있었던 ORF3a 구조를 예측했다. 최근 CASP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단백질 일종인 ORF8의 구조를 예측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딥마인드가 알파폴드2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우수한 컴퓨팅 인프라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와 기업이 함께 슈퍼컴퓨팅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2020년 3월 미국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코로나19 HPC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미국 에너지부(DOE) 산하 국립연구소들과 함께 AWS, AMD, 엔비디아, 인텔과 같은 기업이 모여 각자가 보유한 컴퓨팅 자원을 코로나19 연구를 위해 제공한다.

이를 통해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는 코로나19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는 항체 약물 후보물질을 1039개에서 20개로 선별한 바 있다.

[관련기사]美, 코로나19 연구에 슈퍼컴퓨터 '총동원'
 

◆국내 기업 신테카바이오·디어젠, AI로 코로나19 치료제 발굴

우리나라에도 AI를 사용해 코로나19에 대항하는 약물 개발에 나선 기업들이 있다. 유전체 빅데이터 기반 AI 신약 개발 기업 신테카바이오는 2020년 9월 자체 AI 플랫폼을 활용해 코로나 19 예방 효과가 기대되는 후보 물질을 도출했다.

이 기업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는 단백질 가수분해 효소 ‘3CL hydrolase’의 구조 데이터에 AI를 적용, FDA 승인 의약품 약 3000개 중 30종을 발굴했다.

결과적으로 3가지 물질이 세포실험에서 효과를 보였다. 이 중 2개 약제를 감염 동물모델에 함께 투여(병용 투여)했더니 상당한 폐병변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신테카바이오가 최종 도출한 물질 2종인 자필루카스트(Zafirlukast)와 설핀피라존(Sulfinpyrazone)은 FDA가 최초 승인한 코로나19 치료제 렘데시비르(Remdesivir)보다 2배 이상 치료율을 보였다. 신테카바이오가 국책연구기관과 진행한 실험에서 이들 물질의 치료율은 94.3%, 렘데시비르의 경우 44.3%였다.

이후 2021년 1월 신테카바이오는 한미약품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공동 연구 계약을 맺고 자사가 도출한 후보물질을 활용한 흡입형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두 기업은 신테카바이오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치료제(자필루카스트-설핀피라존 병용) 임상 개발을 진행 중이다. 이외 폐질환 포함 적응증 확장, 해외 인허가, 약물 재창출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한다.

국내 AI 신약 개발 기업 디어젠은 렘데시비르가 코로나19 치료제 효과를 낼 수 있음을 FDA 승인 전에 제시했다.

디어젠은 강근수 단국대 교수 연구팀과 함께 최근 시판 중인 항바이러스제를 AI로 분석, 코로나19 치료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약물을 예측했다.

연구팀은 BMS의 HIV치료제 아타나자비르(Atanazavir)를, 당시 시판되지 않은 약물 가운데 렘데시비르를 꼽았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사이언스가 에볼라치료제로 개발하다 실패한 항바이러스제였다.

해당 연구 결과는 2020년 2월 공개됐다. 이후 2020년 5월 FDA는 렘데시비르를 긴급 사용 승인했으며 같은 해 10월 정식 승인했다.

 

AI타임스 박성은 기자 sage@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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