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 "물량 확보 어렵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2022년쯤 배터리 부족 심각해질 것"
반도체 부족 현상도 심각...완성차 업체 잇따라 생산량 감소
반도체·배터리 부족 공통 분모는 '빠른 디지털전환'

(사진=셔터스톡)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도 공급 부족 적신호가 켜졌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가전제품 시장이 움츠러든 가운데 배터리까지 물량확보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부에서는 전자부품 쇼티지(Shortage) 현상이 디지털전환 가속화에 따른 '몸살'이라며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물량 확보 어렵다"...공급 부족 신호 켜진 배터리 시장

1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공급량이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배터리가 탑재되는 무선청소기, 로봇청소기, 노트북 등을 생산하는 가전 업체와 공구 업체는 현재 필요한 만큼 배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원통형 배터리를 시작으로 배터리 공급 부족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배터리 제조사에 최근 배터리 확보 문의도 많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원통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배터리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셔터스톡)

배터리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기차다. 전기차에는 많은 양의 배터리가 탑재된다. 테슬라 모델X에는 21700 규격 기준 원통형 배터리가 약 6000개 이상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많아지면서 배터리 수요도 급증해 공급 부족 현상까지 이어진 것.

전망은 더 어둡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2025년까지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필요한 배터리 용량은 약 6배 증가하고, 2050년까지 60배 더 많은 배터리 용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LG에너지솔루션, 파나소닉, CATL 등 주요 전기차 배터리 공급업체가 최고 속도로 물량을 공급해도 2022년쯤에는 배터리 부족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 "현대차 너 마저"...반도체 부족으로 생산라인 멈추는 완성차 업체

배터리 부족은 완성차 업체 입장에선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현재 완성차 업체는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위기에 몰려있다. 폭스바겐·제네럴모터스(GM)·포드·토요타·스바루·닛산 등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량 감축에 들어갔다. 

폭스바겐은 반도체가 없어 1월 독일 엠덴 공장을 2주간 가동하지 못했다. 2월부터는 본격 생산량 감산에 들어갔다. 계획한 양보다 생산량이 10만 대 부족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GM도 미국 미주리주 공장을 12일까지 가동하지 않기로 했다. 캔자스스주 공장과 캐나다 잉거솔 공장 역시 2월 초 멈춰 서 아직 가동을 못 하고 있다.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라인이 멈춰서고 있다. (사진=셔터스톡)

반도체 수량 안정권에 있다고 평가됐던 현대자동차도 결국 울산공장을 멈춰 세우기로 했다. 울산 1공장은 7일부터 14일까지 휴업하고, 2~5공장도 3일 하루 주말 특근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인기 차종인 코나와 아이오닉5는 일시적 감산 조치에 들어간다. 현대차 관계자는 "코나는 전방 카메라 반도체의 수급 차질로, 아이오닉5는 파워트레인(PE) 모듈 부품 공급 문제로 감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 빠른 디지털전환이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부족 이끌어

업계에서는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 부족 원인의 공통분모로 빠른 속도의 디지털전환을 꼽는다. 코로나19로 디지털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부품 생산량이 시장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사실 메모리 반도체는 2년을 주기로 수급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을 유지해왔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공급량이 많아 메모리 가격이 하락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서버와 데이터센터에서 메모리 수요가 많아 가격이 폭증하는 '슈퍼사이클'을 겪었다. 2018년말부터 2019년까지는 다시 가격이 하락했다. 시기상으로 보면 올해 슈퍼사이클이 오는 것이 맞다. 전문가들도 이미 지난해 말부터 슈퍼사이클이 온다고 예상한 바 있다.

문제는 코로나19라는 풍파를 만나 비대면 문화가 발생해 서버와 스마트폰 등에서 쓰이는 메모리 수요가 예상보다 높아졌고, 예상치 못한 비메모리에서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메모리 반도체인 디스플레이구동칩(DDI)과 전력반도체(PMIC), 이미지센서는 현재 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코나 생산에 부족하다고 주장한 전방 카메라 반도체 역시 비메모리다.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급속도로 발생한 점이 반도체 부족 현상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셔터스톡)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자동차 판매가 위축되면서 반도체 업체에서는 서버나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반도체 생산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생각보다 자동차 시장이 빨리 회복돼 차량용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면서 "비메모리 수요 부족은 전문가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대면 문화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서버용 반도체가 늘어 메모리 시장 수요도 예상보다 커졌다"며 "앞으로 메모리 시장 사이클은 없어질 것으로 보이고 반도체 부족 현상은 올해 시장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보급이 많아지고, 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가 붙으면서 예상보다 수요가 높아졌다. 자동화를 목표로 개발되는 로봇이나 장비에도 배터리가 많이 탑재되는 추세다. 비대면 문화로 노트북, 무선이어폰 등의 판매량 증가도 배터리 수요 상승을 이끌고 있다. 최근 인기가 높아진 가상현실(VR) 기기에도 배터리가 쓰인다. VR 헤드셋(HMD, Head Mounted Display)의 경우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로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면 배터리는 미래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최근 대부분 기기에는 배터리가 탑재된다"면서 "비대면과 AR 기술 발전, 전기차 수요 증가 등으로 배터리 부족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시설투자로 공급량 확대?..."쉽지 않다"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 부족 문제 해결 방법은 단순하다. 시설투자를 통해 공장의 생산능력(캐파)을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공장을 증설하려면 조 단위 금액이 투자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만큼 수익이 나는 여부를 살펴야 한다. 캐파 확대로 공급량이 시장 수요보다 증가하면 부품의 가격이 하락해 기업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어서다.

SK하이닉스는 시설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노종원 SK하이닉스 경영지원 담당 부사장(CFO)는 1월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발표에서 "코로나19, 환율 등의 대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신중한 투자를 할 예정"이라며 "올해 투자는 전년 10조원보다는 증가하나, 증가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SK하이닉스가 투자를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올해 말 큰 지출이 있다. 70억달러(약 7조 9000억원)를 인텔에 지불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 1000억원)를 주고 인수한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의 인수 대금 1차 클로징 시점이 올해 말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설투자에 SK하이닉스는 신중한 투자를,  삼성전자는 전략적 투자를 한다고 밝혔다. (사진=셔터스톡)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전략적 시설투자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서병훈 삼성전자 부사장은 1월 실적발표에서 "향후 3년간 전략적 시설투자를 확대함과 동시에 의미 있는 규모 인수합병(M&A)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전략적 시설투자는 공급과 수요, 시장 상황 등을 검토 후 기업에 이익이 되면 투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배터리 업계, 시설투자 외에 넘어야 할 산 많아

배터리 업계는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미국 시장에 독자적으로 5조원을 투자하고, 올 상반기 안에 신규 공장 후보지 2곳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미국 내 배터리 생산능력은 지금 5GWh보다 15배 높은 75GWh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2023년 글로벌 톱3를 목표로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7조 700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를 했다. 연구개발(R&D)에는 7100억원을 썼다. 두 금액의 합은 같은 기간 배터리 매출(2조 6400억원)의 3배가 넘는다.

배터리사들은 시설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셔터스톡)

하지만 배터리의 경우 시설투자 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높은 산은 전기차 배터리의 안정성 극복 문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장착된 현대차의 전기차는 지난달 화재 문제로 국내외 합쳐 8만 2000대가 리콜 조치 됐다.

화재 원인은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배터리 원인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책임 분담 비율만 봐도 3대 7(완성차 업체 3, 배터리 제조사 7)로 배터리 제조사 책임이 더 크다. 또한 GM의 전기차 볼트EV도 지난해 미국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해 리콜을 앞두고 있다.

삼성SDI도 화재 문제에 자유롭지 않다. 회사 배터리가 탑재된 포드와 BMW의 전기차 약 5만여 대가 모두 리콜에 들어갔다. 사고가 잇따르면서 배터리사는 연구개발(R&D)을 통해 분리막 소재를 개발해야 하는 등의 과제를 안게 됐다. 리콜을 대비해 충당금을 미리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생겼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소송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지난 2019년 9월 배터리 분리막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미국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1건 등 4건을 침해했다며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회사는 소송과 관련 특허침해 여부와 합의금 등을 놓고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시설투자와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도 "배터리 기업이 처한 여러 문제가 있고 기술개발 등도 필요해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AI타임스 김동원 기자 goodtuna@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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